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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역사 1. 싱가포르의 형성부터 근대사 : 패낭, 말라카, 라우이 (바탐섬 주변)

싱가포르 역사 1. 싱가포르의 형성부터 근대사

: 패낭, 말라카, 라우이 (바탐섬 주변)

여행지를 방문하면서 해당 지역에 대한 간단한 역사를 안다는것은

여행의 격을 한단계 상승시켜주는 의미있는 일이아닌가 싶다.

싱가포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 보자.

1) 싱가포르의 어원

지금의 싱가포르 주변 지역에 대한 옛 지명은 "테마섹"으로 불리웠으며

이때 부터 중계무역으로 번창을 이루었다고 한다.

1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인 라자출란은 중국 정복을 위해

전함을 이끌고 가는 중 잠시 "테마섹"에 주둔하게 되는데,

이 소식을 알게된 중국의 왕은 "테마섹"에서 중국까지

아주 멀고 험난하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결국 라자출란은 중국 정복을 포기하고 해왕의 딸과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 아들이 해상 왕국 스리비자야의 중심지인 팔렘방의 통치자가 된다.

통치자 상닐라 우타마는 어느날  근처 섬 여행을 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왕관등 모든것을 버리고

겨우 목숨만 건지면서 도착한 곳이 싱가포르 강 주변이었고

여기서 "붉은 몸뚱이에 검은 머리와 흰색 가슴을 가가진 이상한 동물"을 마주치게 되고,

이 동물을 사자로 착각하고, 이는 분명 신이 게시한  좋은 징조로 여기면서

이곳을 " 사자의 도시"라고 정하고 정착했다고 한다.

"사자의 도시"는 말레이어로 "싱가푸라" 라고 불리며,

싱가푸라가 이후 싱가포르로 영어식 발음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테마섹 지역에는 호랑이의 출몰은 있었지만,

사자가 살았다는 근거는 찾아볼수 없다고 한다.)

TIP)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센토사섬의  멀라이언 타워를 방문하게 되면 이에 대한 영상을 약10분간 볼수있는데, 

처음에는 너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였으나, 싱가포르 역사를 알고 있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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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싱가포르의 역사

이러한 역사를 가진 싱가푸라 왕조는 지리적 여권으로 인해 교역의 중심지로 꽃을 피우게 되지만,

14세기 말 수마트라 등의 주변국가의 침공을 받아 "말라카" 까지 도망을 가게된다.

 하지만 이곳에 정착하면서 말라카를 싱가포르 보다 더 번성한 해상 교육 중심지로 만든다.

이때부터 싱가포르는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지역으로

유럽 열강이 침범하는 18세기까지 해적의 은신처로만 역사적으로 알려졌다고한다.

TIP) 센토사는 말레이어로 평하로운 이라는 듯이지만, 이 당시에는 Pulau Baakang Mati (죽음 뒤편의 섬)으로

해적들이 사람을 납치해 이 섬 뒤에서 살해를 하였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었으며,

이는 싱가포르가 해적의 소굴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말라카 왕국은 이슬람화되어 술탄의 지배를 받았으며,

말라카 왕국이 말레이 역사의 첫번째 강력한 왕국이 되었다고 한다.


말라카 왕국은 주변 자바(인도네시아)와 시암(태국)의 위협을 항상 받고 있었으며,

이때 명나라는 환관 정화 장군이 이곳을 오게 되면서 중국과 연합을 이루고

주변국에 대해 견제하면서 힘의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함께 16세기 포르투칼이 향신료 무역에 뛰어들면서

말라카 해협의 재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라카를 공격하고

강력한 화포를 앞세워 결국 함락시킨다.


포르투칼에 밀려난 말라카 왕조의 술탄들은

조호 - 리아우 제도(바탐/빈탄섬주변) - 링가섬으로 피신을 떠나지만,

포르투칼의 공격은 계속 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7세기초 네덜란드가 동남아시아로 진출을 하면서 거의 사라질뻔한 술탄들은

네들란드와 손을잡고 조홍 왕국으로 부흥 하면서

말레이반도, 리아우-링가 제도와 수마트라 동부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말라카와 인도네시아 이대를 장악하면서

무역의 최강자가 되지만, 1786년 페낭섬을 차지한 영국이 점차 동남아 일대의를 다시 장악함으로써,

결국 말레이시아 연방에서의 독립이전까지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 페라나칸 문화

 

싱가포르를 여행하다 보면 자주 접하는 단어중 하나가 페라나칸이며, 간단한 유례를 살펴보자.

 중국 명나라 정화 장군의 대항해로 말레이반도에 중국인들이 유입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때 이주한 중국인들은 대부분 젊은 남성 들로 현지에 자리를 잡으면서

말레이 연인과 결혼을 하게되어 혼혈 을 뜻하는 페라나칸(나칸-말레이어로 어린이)나타났다.

TIP) 말레이는 이슬람 문화권으로 무슬림여성은 이슬람 율법때문에

외국인과 결혼을 거의 못하였기에 주로 자바,발리 출신의 말레이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페라나칸에는 인도인과 말레이 혼혈, 서양인과 말레이 혼혈도 포함되지만,

절대적으로 중국 말레이 혼혈이 다수를 이뤘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일대의 무역이 커지면서 중국문화와 말레이 문화가 융합되어

의복, 문양,음식, 주거양식등에서 독특한 페라나칸 문화가 만들어 졌

특히 서구 열강의 진출로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의 영향까지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페라나칸은 인도네시아에 600만명,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50만명 정도가 있는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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